뉴욕 |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서거52주기 추모식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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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 작성일17-07-25 07:32본문
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서거52주기 추모식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서거 52주기를 맞이하여 이승만박사기념사업회 뉴욕지회(회장 안창의 목사)는지난 7월 19(수) 뉴욕프라미스교회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추모예배를 드렸다. 이날 예배는 부회장 김명옥 목사의 인도로 드려진 이날 예배는 박태규 목사의 기도, 요12:20-26을 본문으로 “죽은 밀알 우남”이란 제목으로 뉴욕교협 전회장인 한재홍 목사가 설교에 나섰다.
한재홍 목사는 “그리스 사람 즉 이방인들은 개에 비교를 하면서 사람취급 조차 받지 못했는데,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만나주는 사건이다. 그러므로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잘 한일, 잘 못한 일들을 하게 되겠지만 그래서 무엇이 더 잘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를 보고 평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 민족의 역사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것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30배 60배라는 법칙이 있는데, 그 정도로는 안 될 것이다. 100배의 법칙이 있는 것이다.
이승만 박사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카이로스(시각, 때, καιρός)가 아닌 크로노스(시간,χρόνος)의 역사가 된 것이다. - 주) 헬라어에 대한 설명을 달아 독자이해를 표기함-
그 역사가 인정되는 날 통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각 가정과 단체에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이 박사의 정신을 심어주며 인정받도록 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며 메시지를 전했다.
안창의 목사는 이날 인사말을 통해 “이승만 박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살려서 조국의 앞날을 알 수 없는 이 시대에 이승만 박사의 정신이 희석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유대인 사회가 역사를 가지고 기억하는 것과 같이 우리도 바른 역사의식과 애국애족 사상을 전수받아야 한다.
좌파정권, 전교조의 반미사상과 함께 이승만 박사의 위상을 추락시키고 좌절하게 조정하는 이 시대를 다시 조명하여 위상을 회복시키고 건전한 동포사회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함으로서 세계평하에 기여햐 나아가기를 바란다“며 인사말을 전했다.
한편, 이날 이승만 박사를 기리기 위해 김영호 장로와 신현택 목사를 초청했다.
젊은 시절 이승만 박사를 수행기자로 따랐다는 김영호 장로는 “특별활동을 어린 시절부터 했는데 군인들이 나서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하여 보이스카웃을 세웠는대 그 때 보이스카웃으로 참여하여 가장 가까이에서 이승만 박사를 보며 성장하고 계속 만남이 이어졌다”고 소개를 했다.
김영호 장로는 오늘 추모식을 하는 이유는 바로 오늘 7월19일이 서거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행사를 치르고 있는데 역사학자들이 이승만 박사의 업적을 크게 7가지로 기록해서 그것을 소개한다.
1) 대통령제가 미국식이다. 현재도 이 방식을 따른다.
2) 1953년에 한미상호조약을 맺었다.
3) 70만명의 대군을 만들었다.
4) 농지개혁을 하였다.
5) 교육제도를 바꾸어 놓았다.
6) 양반제도를 폐지했다. 그것은 동시에 남녀평등을 이룬 것이기도 하였다.
7) 기독교를 발전시켰다.
김영호 장로는 KBS등에 근무를 하면서 이승만 박사의 행사마다 참여하는 수행기자로서 늘 가까이에서 만나온 기자로서 뉴욕에서 유일하며 고령자로서 역사를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신현택 목사는 오래 전에 “야인시대에서 은혜의 시대로”의 책을 저술하고 세미나 등을 통해 많이 알려진 목회자이기도 하다. 신현택 목사는 이승만 박사가 별장에 있을 때 그곳에 근무를하며 가까이 뵈었다. 당시 이승만 박사의 주변의 분들이 대부분 고향의 분들이다. 경무대의 곽영주를 비롯해 유명했던 이정재, 유지광, 임화수 등이 있었다.“며 당시의 환경을 생각했다. 또한 신현택 목사는 미국에 오며 이곳에서 국민회를 등록하고 했으며, 훗날 한인회를 설립하여 처음으로 한인회장이 되기도 했다. 초대 한인회장이었던 신현택 목사는 한국에서 독립기념관을 짓는다 하여 그곳으로 자료들을 전달 하는 등의 활동을 하며 대한민국의 건국사를 보전하게 하는데 이바지를 하기도 했다.”는 기억들은 참석자들이 역사적으로도 참고가 되기도 하는 귀중한 시간을 갖기도 했다.
한편, 지난 수년간 사무총장으로 활동하던 황일봉 장로에 이어 신임사무총장으로 선임된 현영갑 목사(교육분과겸)는 오늘날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현재 정세에 대하여 그릇된 점들을 지적하며, 상황을 직시해야 함을 강조했다. 현영갑 목사는 “현재 우리나라의 원전기술은 세계 3위이며 40%의 기술이 모두 한국에서 소유한 것이다. 이명박 정권때 아랍아메리트에 수출을 한 원전, 그 하나의 원자력을 발전시키고 세웠다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컨트롤 할 수 있는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대한민국이며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 뉴스를 보니 원전기술을 제한한다고 하였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500년을 먹고살 수 있는 기술을 단 5년짜리 임기를 맡은 한 사람이 이것을 폐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승만 박사는 생존 하셨을 때 이미 이와 같은 날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인건비도 가장 비싼 나라 중의 하나인데 일본 자동차와 기술력이나 수준도 비슷하다. 그런데 왜 한국차가 일본산 자동차보다 몇 천불이나 저렴한 이유는 전기세 때문인 것이다.
아무리 노동력이 저렴하기로 해외로 생산공장을 세우고 하여도 중국이나 동남아로 갈 수 없는 생상품목이 있다. 그것은 바로 반도체 생산 공장이다, 그 이유는 전기요금이 저렴하기 때문이다. 또한 안정적이기도 하다. 정밀한 생산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인 것이다.
도미노 이론이 있다 공산주의는 이웃나라들을 공산화시키며 넘기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6,25를 통해 미국이 이같은 것을 알게 되어 그리스, 터키 등을 초토화하고 한국전에서까지 넘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시작된 것이 냉전의 시대가 되었다. 이 냉전의 시대는 어떤 면에서는 대한민국의 발전에 대한 전환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한국은 사농공상, 즉 양반이 상급이고 유교적, 주자학적 정신으로 이와 같은 제도로 막혀있었다. 전세계를 돌아 보아도 자기 국민을 노예화 하여 있던 나라는 없었다. 최대 58퍼센트나 노예가 된 때도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점에서 노예제의 폐지, 남녀의 평등 등은 이승만 박사에 감사를 해야 한다. 이승만 박사의 기도제목은 100만의 기독교인이었다. 그러나 임기를 마칠 때에는 160만의 기독교인이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이 박사의 정신과 마음을 잘 계승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며 세미나를 통해 애국의 마음을 전했다.
이승만 기념사업회는 이곳에 사무실에 여러 역사적 자료를 준비하고 있다. 이승만 박사에 대하여 사진 관람 및 안내는 협회 사무실에 연락하면 된다. 또한 이승만 학당도 곧 개설하여 역사에 대하여 이승만 박사에 대하여 젊은 층의 사람들이 많이 참여하여 이 정신을 이어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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